심리검사는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가요?

본문 바로가기

메인페이지로 가기

라비에벨 심리상담 학습클리닉전문센터

심리검사는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가요?

심리검사는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가요?

현대적인 심리검사는 그 역사가 상당히 짧습니다. 심리학 자체가 철학과 생리학으로부터 독립해 하나의 학문으로 출발한 것이 겨우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였습니다. 심리학이 출현한 공식적인 시기는 독일의 W. Wundt가 라이프치히에 실험실을 개설한 해인 1879년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Wundt는 심리학 연구를 위해서는 물리학의 연구 모델을 따라야 한다고 보고, 물리학의 특징인 실험적 조작과 객관적인 측정을 강조하였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Wundt는 ‘통제된 조건하의 피험자 관찰’을 기본적인 방법론으로 사용하였고, 감각기관과 반응시간이라는 한정된 대상에 연구의 관심을 두었습니다. 


Wundt는 심리학에 있어서 양적 측정의 전통을 확립하면서 심리측정학(Psychometrics)의 발달에 중요한 토대를 마련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엄격한 실험적 통제에도 불구하고 나타나는 피험자 간의 반응차를 측정오류, 관찰자의 태만 또는 실험조건의 통제 실패 등으로 간주하였을 뿐, 반응하는 개인들 자체의 차이, 즉 개인차에 의하여 반응에 차이가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수용하지 못하였습니다. Wundt의 주 목적은 모든 인간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일반 원리를 발견하고자 하는 데 있었던 것입니다.


현대적인 심리검사의 시조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으나, F. Galton(1922-1911), J. Cattell(1860-1944), A. Binet(1857-1911) 중 한 사람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특히 진화론의 창시자인 Darwin의 사촌으로, 진화론에 바탕을 두고 개인차 연구에 일생을 바쳤던 Galton은 개인차 연구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는 개인차가 일어나는 것은 지적 능력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는데, 지적 능력은 유전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우수한 유전자를 지닌 천재를 탐지해 내기 위하여 여러 가지 검사들을 고안하였습니다. 초기에는 인간의 신체적 특징과 감각식별에 관심이 제한되어 있었으나, 점차 평정 척도(rating scale)를 사용하면서 심리적인 기능들을 평가하였고 후기에는 자유연상기법까지도 사용하였습니다.


그의 중요한 공헌의 하나로, 개인차에 대한 자료분석을 위하여 통계적인 기법을 발달시켰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Galton은 두 측정치 간의 관계의 방향과 그 강도를 나타내기 위하여 수학적인 표현방식을 개발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상관계수입니다. 상관기법의 바탕이 되는 통계적인 방법론은 이후 심리검사에 적용되면서 검사의 발달에 많은 공헌을 하였습니다.


Cattell은 ‘정신검사(mental test)’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제안한 사람입니다. Cattell은 원래 Wundt의 심리학 실험실의 대학원생이었습니다. 그는 행동 관찰에 있어서의 철저한 통제와 객관적 관찰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Wundt와 같은 입장을 취하였으나, 개인차에 대해서 고려하지 않고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인 원리를 찾아내는 것이 심리학의 주요 목적이라고 보는 견해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에 있었습니다. Cattell은 개인차가 중요한 연구 대상임을 주장하면서 ‘반응 시간에 있어서의 개인차’라는 연구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몇 년 후 영국의 Galton과 접촉하면서 더욱 개인차 연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Cattell은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서 펜실베이니아 대학과 콜롬비아 대학에 심리학 연구소를 설치하였고, 주로 감각과 운동반응 능력에 관한 10가지 항목으로 구성된 지능 검사를 제안하였습니다.


이에 비하여 프랑스학자 Binet는 Cattell의 검사가 너무 단순하고 감각 과제에만 한정되어 있다는 점에 대해서 비판하면서 보다 복잡한 내용의 검사법이 필요하다는 입장에서 연구를 해 나갔습니다. 그러던 중 1904년 프랑스에서는 의무교육이 처음으로 실시되면서, 정규교육을 따라갈 능력이 없는 아동들에 대한 교육에 대해서 논의하기 위하여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였습니다. 당시 Binet는 프랑스 파리 소르본느 대학의 심리학 실험실 주임교수로서 아동의 기억, 상상력, 지능 등에 대해서 연구하던 중에 이 위원회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논의 결과 객관적인 진단도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고, Binet는 동료인 T. Simon과 함께 정상아와 정신지체아의 감별을 목적으로 ‘Binet-Simon 검사’를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이 검사를 통해서 처음으로 ‘정신 연령(mental age)’이라는 용어도 소개되었습니다. 이 검사는 체계화된 최초의 지능검사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실험실 내에서만 연구되어 온 심리학을 처음으로 현장에 적용한 학자는 Binet라고 볼 수 있습니다. L. Terman은 Binet의 뒤를 이어 연구를 하면서, Binet-Simon 검사를 개정하여 1916년 ‘Stanford-Binet 검사’라는 이름으로 발표하였습니다. Binet 검사는 이후에도 여러 번 개정되면서 임상심리학의 초석을 마련하였으며, 1940년대까지 응용 심리학자들의 주된 도구로 이용되었습니다. (이 검사는 우리나라에서도 1971년 고려대학교 심리학과의 전용신 교수가 우리나라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표준화시켜 ‘고대-Binet 검사’라는 이름으로 발표하였습니다).


이 무렵에 외국인이나 언어 능력이 제한되어 있는 사람들의 지능을 측정하기 위하여 비언어적인 방법으로 실시되는 동작성 검사들이 개발되었습니다. 이 시기의 또 다른 중요한 발전은 집단용 검사의 발달이었습니다(이전의 검사들은 모두 개인용 검사였음).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신병들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적소에 배치할 필요가 생겼는데, Binet 검사는 개인용이기 때문에 이런 목적에 부응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스탠포드 대학의 A. Otis는 미 육군성의 요청을 받고 Binet의 검사를 지필검사용으로 새롭게 개정하여, 집단용 지능검사인 ‘Army Alpha’를 제작하였습니다. 또한 문맹자나 영어를 모르는 외국인을 위하여 비언어적인 검사인 ‘Army Beta’를 제작하였습니다. 전후에도 이들 검사들이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는데, 불행히도 무차별적으로 적용됨으로써 오용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1920년대 후반부터 약 10년간 심리검사자들은 다양한 심리적 기능을 대표할 수 있는 단일 점수를 얻기 위한 측정과 방법론에 1차적인 관심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편, 정신분석학자들은 다른 다양한 방법으로 심리적 기능을 측정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심리검사의 개발 과정을 살펴보면, 정신분석적 이론과 치료기법이 임상 기법의 발달에 초석이 되어서 의식 영역에서의 사고와 감정뿐 아니라 의식 밖의 영역에 대해서도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Freud는 면담을 통해서 환자의 생각과 감정,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 환자 특유의 언어와 행동 양식 등을 관찰함으로써 환자에 대해 이해하고 평가하는 방법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는 이런 방법을 통해 성격의 무의식적인 측면을 연구하면서, 인간의 이러한 내재된 측면은 매우 민감하고 유연하며 상세한 질문에 의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또 다른 심층심리학자로 분석심리학의 창시자인 C. Jung은 ‘단어연상검사’를 고안하였습니다. 그는 정서가를 지닌 일련의 단어를 선택하여 제시된 단어에 대한 연상내용, 반응시간, 특이한 표출행동(얼굴을 붉힌다든가 소리내어 웃는다든가 하는)이 나타나는 것에 주목하였습니다. 그는 이런 연상과정에서의 변이는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속에 ‘감정적으로 강조된 콤플렉스’ 같은 것이 있어 이것이 자극어에 의해 자극되면 연상과정을 방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Rorschach 검사의 출현은 심리학, 특히 임상심리학의 발달에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1911년 H. 로르샤흐는 Munsterlingen 병원 정신과에서 수련을 받던 중에, 잉크 반점 카드를 이용하는 놀이에서 정상인이 보이는 반응과 정신과 환자들이 보이는 반응에 차이가 있다는 사실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하였고, 1917년에서 1918년 사이에 이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에 착수하였습니다. 그는 1921년에 『Psychodiagnostik』을 출간하면서 10개의 카드로 구성된 로르샤흐 검사 도구도 출판하였으나, 불행히도 이 책이 출간된 직후인 1922년에 37세의 나이로 요절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그의 동료들인 W. Morgenthaler, E. Oberholzer, G. Roemer 등이 Rorschach의 연구를 이어나갔습니다. 1930년대 중반 무렵 임상심리학자들에게 로르샤흐 검사는 큰 인기를 얻었으며, S. Beck, M. Hertz, B. Klopfer, Z. Piotrowski, D. Rapaport, R. Schafer 같은 많은 심리학자들이 로르샤흐 연구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1974년 이후 J. Exner는 여러 학자들의 로르샤흐 채점 체계를 종합하여 ‘로르샤흐 종합체계’를 고안하여 발표하였는데, 현재 이 종합체계가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한편, 1920년대 후반 M. Prince는 다양한 임상적, 학문적 견해를 조화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Harvard Psychological Clinic’을 세웠습니다. 그의 후임으로 H. Murray가 이를 이어받았는데, Murray는 학문 및 임상적 심리학의 선구자로 활동하면서 Morgan과 함께 1935년 ‘Thematic Apperception Test(TAT)’를 세상에 소개하였습니다. 그는 1938년 「Exploration in Personality」에 TAT의 결과와 일반적 성격이론을 통합하여 발표하였습니다.


TAT의 출현과 같은 시기인 1939년에는 새로운 성인용 지능검사인 ‘Wechsler-Bellevue 지능검사’가 개발되었습니다. 그때까지는 Stanford-Binet 검사가 유일한 표준적인 지능검사로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Binet 검사는 획기적인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가장 큰 문제는 이것이 처음에는 아동용 검사로 고안되었다가 나중에 성인 규준을 첨가한 것이어서 성인의 지능을 측정하기에는 여러 모로 부적합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나이에 따른 지능의 직선적인 증가를 가정하는 ‘정신 연령’이라는 개념은 성인의 지능을 표현하는 데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또, 지나치게 언어적인 면에 치중하여 구성되어 있어서 비언어적인 면에 대한 평가가 도외시되어 있다는 문제점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런 단점을 극복하고자 하는 배경에서 D. Wechsler는 당시 개발되어 있었던 여러 검사들에 바탕을 두고 자신의 이론적 입장을 첨가하여 ‘Wechsler-Bellevue Intelligence Scale’을 개발하였는데, 이는 급속하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이후 곧 아동용 Wechsler 검사도 개발되었고 성인용과 아동용 모두 여러 번의 개정을 거치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현재 Wechsler 지능검사는 가장 널리 쓰이는 개인용 지능검사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1963년에 전용신 등이 이를 표준화하여 ‘한국판 Wechsler 지능검사(KWIS)’라는 이름으로 사용해 왔으며 1992년에 ‘K-WAIS’라는 이름으로 재표준화 되었습니다).


이상과 같은 여러 가지 심리검사들이 출현하고 현장에서 사용되어 오던 중에, 심리평가를 위해서는 검사를 총집(battery)으로 사용하는 것이 필수적임을 주장한 임상가들이 나타났는데, 이들이 바로 Rapaport, Gill, Schafer 입니다. 이들은 「Diagnostic Psychological Testing」(1946)에서 자신들의 임상경험을 근거로 각 개별검사들이 측정하는 특정한 심리기능을 구체화하고 이런 기능들이 어떻게 여러 가지 정신병리적 상태들과 관련되는지를 밝히려는 시도를 하였습니다. 이들은 각 검사들은 서로 다른 심리적 수준과 기능을 측정하므로, 여러 가지 검사에서 얻어진 결과들을 통합해서 해석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통합적 입장은 현재까지도 지속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